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Howard Phillips “H.P.” Lovecraft, 1890.8.20~1937.3.15) 는 미국의 호러, 판타지, SF, 위어드 픽션 장르의 작가이다.
러브크래프트의 작품 세계는 그가 “코즈믹이즘 ”혹은 “코즈믹 호러 ”라고 이름 붙인 원칙에 기반하고 있다. 코즈믹 호러 작품에서 삶과 우주는 모두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의 소설에서 나타나는 매우 이성적인 인물들은 자신의 정신을 담보로 도박을 벌인다.
이미 1940년대에 그의 크툴루 신화 를 추종하는 작가들이 생겨나게 된다. 이 신화는 인간을 절망하게 만드는 존재들에 대한 여러 작품들의 느슨한 연결로 이루어져 있다. 이를테면 마법적 의례와 금기의 지식을 담은 네크로노미콘 과 같은 마법서는 이 작가들의 작품에서 수시로 등장한다.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은 매우 비관적이고 시니컬하며 인간의 진보와 낭만주의, 그리고 기독교적 휴머니즘의 가치에 도전한다. 러브크래프트의 주인공들은 궁극의 진실과 심연을 잠깐 드려다 봄으로써 전통적인 영지주의 와 신비주의 의 정 반대편에 도달하게 된다.
러브크래프트가 활동하던 시절의 독자는 많지 않았지만 시대를 거듭할수록 그에 대한 평가는 높아져 갔고, 이제는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호러 소설 작가 중 하나로 인정을 받고 있다. 조이스 캐롤 오테스 는 러브크래프트에 대해 말하길 19세기의 에드거 앨런 포우 와 함께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후대의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스티븐 킹 은 러브크래프트를 “20세기 최고의 정통파 호러 작가”라고 평했다.
러브크래프트는 표면적으로는 보수적 미국인처럼 보였지만 그 자신은 “뉴딜 민주당파”라고 생각했고 프랭클린 델라노 루즈벨트 의 열렬한 추종자이기도 했다.
러브크래프트는 1890년 8월 20일 오전 9시에 로드아일랜드주 프로비던스시 엔젤스트리트 194번지(이후 454번지로 변경)의 그의 집에서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인 윈필드 스콧 러브크래프트는 보석과 귀금속판매를 위해 각지를 떠도는 외판원이었으며 어머니인 수잔 필립스 러브크래프트는 1630년의 메사추세츠 식민지 무렵까지 조상을 확인할 수 있는 집안 출신이었다. 이 둘의 결혼은 양 쪽 모두에게 첫 결혼이었고 나이는 둘 다 서른살이었다.
러브크래프트가 세 살이 되었을 무렵 그의 아버지는 출장 중에 시카고의 한 호텔에서 정신병자가 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프로비던스로 되돌아와 버틀러(Butler)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고, 1998년에 사망할 때까지 퇴원하지 못했다. 러브크래프트는 그의 아버지가 과로로 인한 “신경 쇠약”으로 사망한 줄 알고 있었지만 현재에는 이것이 전형적인 마비성 치매 증상인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러브크래프트가 아버지의 병과 그 원인(매독)에 대해 알고 있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적어도 그의 어머니는 이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예방약”으로써 비소 팅크를 복용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아버지가 입원한 뒤 러브크래프트는 어머니와 두 이모(릴리안 델로라 필립스, 애니 에메라인 필립스), 외조부(휘비 판 뷰렌 필립스) 가 양육했다. 러브크래프트는 세 살에 이미 시 낭송의 신동이었며 여섯살에는 완전한 시를 창작했다. 그의 할아버지는 이런 러브크래프트에게 독서를 장려했고 아라비안 나이트, 토마스 볼핀치의 그리스 로마 신화(The Age of Fable), 아동용 일리아드와 오딧세이 등을 사다 주었다. 그리고 그가 직접 창작한 고딕 호러 이야기를 통해 러브크래프트의 흥미를 이 쪽으로 쏠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러브크래프트의 어머니는 이러한 이야기들이 아들을 심란하게 만들지 않을까 염려했다.
러브크래프트는 어린 시절에 자주 앓았다. 러브크래프트 자신은 육체적 원인만을 거론했지만 이는 명백히 정신적인 부분이 원인이었다. 아버지가 앓던 매독이 어머니를 통해 태아전염되었다는 초기의 견해는 현재에는 설득력을 잃었다.
병약했던 체질과 버릇없고 시비 걸기를 좋아하는 성격 탓에 여덟 살이 될 때 까지 학교 거의 나가지 못했고 다음해엔 학교를 자퇴하였다. 이 시기의 러브크래프트는 독서에 열중했고 특히 화학과 천문학에 심취했다. 그는 “사이언티픽 가젯(Scientific Gazette)”이라는 출판물을 젤라틴판 인쇄 동인 출판으로 배포했고, 4년 후 로드 아일랜드의 호프 고등학교를 통해 공교육으로 복귀했다.
어린 시절의 러브크래프트는 야경증(night terrors)이라는 희귀한 수면장애를 앓았던 것으로 보인다. 러브크래프트는 자신이 무서운 “나이트건트(Nightgaunt)”에게 습격받았다고 믿었다. 후일 만들어진 그의 작품은 이러한 공포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나이트건트”는 그가 쓴 시의 제목으로도 사용되었으며 얼굴이 없는 악마 같은 생물들로 묘사가 되었다.)
러브크래프트의 할아버지가 1904년 사망했고, 할아버지의 잘못된 재산 관리로 가세가 기울어 그의 가족들은 좀 더 작은 집을 찾아 엔젤 스트리트 598번지(현재엔 복층 건물이 되어 598~600 번지로 변경)로 이주할 수 밖에 없었다. 태어난 집을 잃어버린 충격으로 러브크래프트는 크게 상심하여 한 때엔 자살을 생각하기도 하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 그는 후일 자신이 “신경 쇠약”이라고 표현한 증세에 시달린다고 주장했고 결과적으로 고등학교 졸업 학위를 받지 못했다. (하지만 러브크래프트는 항상 자신이 고등학교를 졸업했다고 주장했다.) S. T. 조쉬는 그가 쓴 러브크래프트 평전에서 그가 병을 앓은 원인으로 천문학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고급 수학을 공부하는데 겪은 어려움을 지목하고 있다. 학교 교육을 끝까지 받지 못한 부분은 그의 일생 내내 실망스럽고 부끄러운 부분으로 남아있게 된다. (그는 브라운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싶어 했다.)
러브크래프트는 젊은 시절에 소설을 좀 쓰기도 했지만 1908년부터 1913년까지의 작품들은 대체로 시였다. 이 시절의 러브크래프트는 거의 외부와 접촉을 갖지 않고 살았다. 어머니 이외엔 만나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이러한 생활은 아르고시(The Argosy)라는 펄프 잡지에 독자 투고를 하면서 달라지게 된다. 이 잡지의 유명 작가가 쓴 러브스토리의 진부함을 지적한 이 투고는 이 잡지의 투고란에 논쟁이 계속되는 시발점이 되었고 미국 아마추어 기자 연합(UAPA) 회장 에드워드 F 다스의 눈에 띄게 된다. 다스는 1914년 러브크래프트를 협회에 가입시켰고 러브크래프트는 협회 활동으로 기운을 차려 많은 시와 에세이를 쓸 수 있었다. 1917년 담당자의 독촉으로 소설 창작으로 되돌아와 좀 더 세련된 스토리로 ”묘지 (The Tomb)”, ”다곤“과 같은 작품을 썼다. 이들은 처음으로 상업 출판된 그의 작품이다. 이 작품들은 1923년에 각각 베이그런트와 위어드 테일즈(Weird Tales)에 수록되었다.
이 시절 그는 대단히 폭 넓은 편지 인맥을 만들어 나갔다. 러브크래프트의 길고 장황한 편지들로 그는 20세기 최고의 편지 작가가 되었다. 그와 편지를 주고받던 사람들은 로버트 브로쉬(사이코), 클라크 애쉬톤 스미스, 로버트 E. 하워드(코난 더 바바리안 시리즈) 등이 있다.
히스테리와 우울증을 오랫동안 앓은 러브크래프트의 어머니는 1919년에 아버지의 뒤를 따라 버틀러 병원에 입원한다. 하지만 1921년 어머니가 담낭 수술중의 의료사고로 사망할 때까지 러브크래프트는 어머니와 편지를 주고받는 등 친밀한 관계를 계속 유지하였다. 어머니가 사망하자 러브크래프트는 깊은 상심에 빠졌다.
어머니가 사망한 하고 난 뒤 몇 주 후, 러브크래프트는 보스톤의 아마추어 저널리스트 집회에 참여했고, 소니아 그린을 만나게 된다. 우크라이나계 유태인 집안의 소니아 그린은 1883년 출생으로 러브크래프트보다 7살이 많았고 모자 가게를 경영하고 있었다. 둘은 1924년 결혼했고 부루클린으로 이주했다. 러브크래프트의 이모들은 장사를 하는 여성과 러브크래프트가 결혼하는걸 달가워하지 않았다.
러브크래프트는 뉴욕을 정말 마음에 들어 했지만 곧 경제적인 어려움에 봉착했다. 그리니는 모자 가게를 폐업했고 건강도 안 좋아졌다. 러브크래프트는 이 둘의 생계를 모두 책임질 수 있을만한 일자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 러브크래프트는 부루클린에 인접한 레드훅에서 아내와 별거하게 된다. 하지만 이민자들의 홍수 속에서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기는 힘들었고 그의 앵글로 색슨으로서의 자존심은 상처를 입었다. 이런 인종주의적 공포는 후에 단편 레드훅의 공포로 승화되었다.
몇 년 후에도 부부는 계속 별거중이었고 우호적 이혼에 합의하게 된다. 러브크래프트는 여생을 이모들과 지내기 위해 프로비던스로 되돌아오게 된다.
프로비던스로 되돌아온 러브크래프트는 바네스 스트리트 10번지의 “넓은 갈색 빅토리아식 목재 건물”에서 1933년까지 살았다. 이 주소는 러브크래프트의 작품 찰스 덱스터 워드의 비밀(The Case of Charles Dexter Ward)의 윌렛 박사의 집 주소이기도 하다. 이 곳에서 러브크래프트는 죽을 때 까지 살았으며 가장 왕성한 창작 활동을 하였다. 이 시절에 위어드 테일즈를 필두로 한 펄프 픽션의 유명 단편들을 러브크래프트 혼자서 다 쓰기도 하였다. 찰스 덱스터 워드의 비밀, 광기의 산맥(At the Mountains of Madness) 등의 장편도 그 시기에 쓰여진 대표작이다.
그는 다른 작가들의 원고 개선 작업을 자주 했고 고스트 라이팅도 굉장히 많이 했다. ”무덤(The Mound)”, ”날개달린 죽음(Winged Death)”, 피라미드 아래에서(Under the Pyramids” (“파라오와 함께 갇히다”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알론조 타이퍼의 일기” 등이 이런 고스트 라이팅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러브크래프트는 창작에 심혈을 기울였지만 점점 더 가난해지기만 했고 늙은 이모와 함께 점점 더 작고 누추한 집으로 거처를 옮겨야 했다. 로버트 E. 하워드의 죽음에 많은 영향을 받기도 하였다. 1936년 대장암 진단을 받았고 영양실조에 시달리기도 했다. 고통에 시달리던 그는 1937년 5월 15일 프로비던스에서 사망하였다.
러브크래프트는 부모님을 따라 필립스 가족 묘지에 안장되었다. 하지만 팬들은 1977년 돈을 모아 스완 포인트 공동묘지에 묘비를 세워 주었다. 묘비엔 러브크래프트의 이름과 생몰일자, 그리고 “내가 프로비던스다.(I AM PROCIDENCE)“라는 그의 편지 인용문이 새겨져 있다.
러브크래프트의 이름은 호러 소설과 동의어이다. 그의 작품들 중 특히 ”크툴루 신화“는 세계의 소설가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러브크래프트의 흔적은 소설, 영화, 음악, 만화 등에서도 나타난다. 스티븐 킹,벤틀리 리틀, 조 랜스데일, 알랜 무어, 이토 준지, F. 폴 윌슨 등의 작가가 자신이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작가로 러브크래프트를 꼽고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유명세에 비해 러브크래프트 그 자신은 생전엔 상대적으로 별로 알려져 있지 않았다. 위어드 테일즈에서는 굉장히 유명했지만, 일반적인 사람들에겐 알려져 있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의 일반적인 작가인 클라크 애쉬튼 스미스(Clark Ashton Smith)나 어거스트 덜레스(August Derleth)와 많은 서신 교환을 했다. 이들 작가와 러브크래프트는 실제로 만난 적은 없지만 좋은 관계를 유지해 갔다. 이러한 서신 교환 그룹이 “러브크래프트 서클”로 알려져 있다.
이 그룹의 작가들은 러브크래프트의 세계관을 자유롭게 빌려다 썼다. 기괴한 이름의 신비적인 책, 크툴루나 아자토스와 같은 고대의 외계 신들, 뉴잉글랜트 타운의 아캄이나 미스캐토닉 대학과 같은 불길한 지명들이 이들 그룹의 작품들 속에서 나타나고 러브크레프트는 이러한 일들을 장려하였다.
러브크래프트의 사후에도 이들 그룹의 활동은 계속되었다.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한 어거스트 덜레스는 러브크래프트의 설정을 확장해 나갔다. 덜레스의 설정은 상당한 논란이 되고 있다. 러브크래프트는 외계의 신들을 플롯의 장치 이상으로 여기지 않았지만 덜레스는 이 세계의 우주론과 '선신'인 '엘더 갓(Elder God)과 '악신'인 아우터 갓(Outer God)의 전쟁과 대립을 만들고 크툴루를 비롯한 아우터 갓들을 땅 속과 바다 밑으로 봉인해 버리고 승리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서로 다른 신들을 4원소로 묶어내기도 하였다.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은 일부 평론가들에 의해 세 가지 시기로 나눠지지만 러브크래프트 자신이 이런 분류를 한 적은 없다.
일부 평론가들은 드림 사이클과 크툴루 신화 양 쪽에서 네크로노미콘과 “신들”의 이름이 등장하지만 이 둘 사이엔 약간의 차이가 있다고 주장한다. 드림 사이클은 판타지 장르이고 크툴루 신화는 SF이다. 드림 사이클에서 등장하는 초자연적 존재들은 그들의 서식처나 신화적인 공간에서만 등장할 뿐이지만, 크툴루 신화에서는 인간이 살아가는 시공간에 그들이 나타난다.
러브크래프트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나에겐 에드거 앨런 포우적인 부분과 로드 던새니적인 부분이 있다. 그런데 러브크래프트적인 부분은 어디에 있는가?” 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러브크래프트의 취향은 애드거 앨런 포우의 작품들에 대한 애정으로 이어졌고, 러브크래프트 초기의 “괴담”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스산한 분위기와 도처에 도사린 공포는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로드 던새니의 작품에서 등장하는 꿈같은 세상의 초자연적인 신들의 이야기는 러브크래프트의 창작을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드림랜드의 설정은 던새니의 영향을 받은 부분이 많다.
또 다른 영감의 소스는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생명공학, 천문학, 지질한, 물리학 등의 당시 과학의 발전은 유물론적이고 기계론적인 세계관 속에서 인간을 무의미하고, 무기력하고 비관적으로 만들었다고 보았다. 물론 이러한 생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코즈믹시즘이었고 그의 무신론의 근간이 되기도 하였다.
이런 이유로 초차원의 신들과 억겁의 과거의 신화와 전설 속에서 암시되는 인류 기원 이전의 공포에 관한, 소위 말하는 ”크툴루 신화“는 어두운 색조를 띄게 되었다. “크툴루 신화”라는 단어는 러브크래프트와 교류하던 작가 어거스트 덜레스에 의해서 러브크래프트 사후에 만들어졌다. 러브크래프트는 생전에 이 인공적인 신화를 장난스레 ”요그소토스학(Yog-Sothothery)“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그가 창작한 가장 영향력 있는 창작 소재는 네크로노미콘이다. 미친 아랍인 압둘 알 하즈레드가 쓴 이 책은 비밀스런 마법서로, 이 신화적 컨셉의 반향과 힘은 러브크래프트가 실존하던 전설이나 오컬트적 신앙을 기초로 이 책을 설정했다는 잘못된 결론을 내리는 경우도 있다. 가짜 네크로노미콘 또한 해를 거듭하며 계속 출판되고 있다. 몇가지 마법적 체계 또한 크툴루 신화를 기반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카오스 마법 커뮤니티가 이러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의 시는 일종의 골동품 수집 행위라고도 볼 수 있다. 시 창작에 있어서 그 당시에 이미 새로운 말로 대체된 고풍스런 단어나 스펠링을 자주 사용했다. 이를테면 에스키모(Eskimo)를 Esqui maux로 쓰거나 완료하다(complete)를 compleat로, 보여주다(show)를 Shew 등으로 쓰기도 했다.
또한 “섬뜩한(eldritch)”, “주름진(rugose)”, “역겨운(noisome)”, “비늘로 덮힌(squamous)”, “혈액같은 액체(ichor)”, “거대한(cyclopean)“과 같은 일부만이 이해할 수 있는 어휘들도 즐겨 사용으며, 저속하고 부정확하다고 비판받는 사투리도 그대로 사용하기도 했다.
또한 영국 문학적인 특성도 가지고 있었다. “colour”, “honor”와 같은 영국식 철자법을 즐겨 사용했다.
내 생각에 이 세상에서 가장 자비로운 것은 인간의 마음이 이 모든 내용을 모두 연관지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무한의 검은 바다 한가운데의 평온한 무지의 섬 위에 살고 있다. 이 말은 우리가 멀리 여행을 떠나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각자 자신이 나아갈 방향을 향해 우릴 잡아당기고 있는 과학은 아직 우리에게 그다지 해를 미치지 않고 있지만, 하지만 언젠가 이어붙여놓은 지식들은 우리가 위치한 곳의 끔찍한 현실의 풍경을 열어 젖힐 것이다. 그 때엔 우리 모두 이 까발겨진 현실 앞에서 미쳐버리거나 이 치명적인 빛으로부터 새로운 암흑시대의 평화와 안전 속으로 달아나고야 말 것이다.
1926년작 “크툴루의 부름”
러브크래프트의 주인공들은 이런 작가의 경고엔 아랑곳하지 않고 이 “조각 모으기”에 뛰어들게 되는 것이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메인 플롯이다.
진실의 문이 열렸을 때, 주인공의 마음은 대부분 부서져버린다. 에리히 잔의 음악은 이러한 대표적인 경우이다. 이 이야기는 미친 벙어리 비올 연주가의 6층 아파트에 관한 것이다. 이 아파트의 창문만이 신비롭게 사라지는 파리식 거리의 풍경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높다. 그리고 벽의 반대편엔 상상할 수 없는 공포가 도사리고 있다.
이와 유사하게 그의 마지막 장편이자 최고의 완성도를 지닌 작품 ”광기의 산맥“에서는 남극 한복판, 얼어붙은 오지의 고대 종족들이 살던 도시의 비밀을 밝혀낸다. 이 곳에서 인류의 기원아 밝혀진다. (그레이트 올드 원들의 오락을 위해 우연히 만들어진 '장난감'으로 창조되었다.) 불길한 사건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탐험대원들은 대부분 죽게 되고 댄포스는 고대의 지식 때문에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미쳐버린다. '금지된 지식'에 관한 주제는 작품의 서두에서 탐험대장과 생존자(다이어 교수)가 언급한다. “난 말을 할 수 밖에 없다. 인간의 과학은 나의 충고를 이유를 알려고도 하지 않고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지식을 추구하는 자들은 거의 예외없이 죽음을 맞이한다. 때론 그들의 행위가 악한 존재들의 관심을 끌기도 한다. 그들 자신이 만들어낸 괴물에 의해 파멸을 맞이할 때도 있다.
크툴루 신화에 등장하는 존재들은 때대로 수하로 인간을 부리기도 한다. 크툴루를 예로 들면 그린란드의 에스키모에서부터 루이지애나의 부두교 집단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의 수 많은 종파들이 서로 다른 이름으로 그를 숭배한다. 이 숭배자들을 러브크래프트는 매우 유용하게 이용했다. 신화의 많은 존재들은 너무 강하기 때문에 인간의 의지로는 대적할 수가 없는데다가 직접적으로 지식과 접촉하면 희생자를 미쳐버리게 만들어버리기도 한다.
이러한 존재를 다루기 위해서 러브크래프트는 이야기가 싱겁게 끝나버리기 전에 이러한 사례를 제시할 필요가 있었다. 신적 존재에 대한 인간 추종자들은 주인공에게 그들의 “신”에 대한 희미한 형태를 알려주게 되고 그리하여 주인공은 하찮은 승리를 거둘 수 있게 된다. 러브크래프트는 동시대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야만인”들을 훨씬 지구와 가까운 존재들로 상상했고, 이는 러브크래프트에 한해서 그렇기에 크툴루에게 말할 수 있고 그에가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존재라는 의미였다.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에서 자주 나타나는 또다른 형태는 자손들은 조상이 저지른 범죄가 잔혹무도했을 경우 죄의 흔적으로부터 달아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자손들은 사건이 벌어졌던 시공간으로부터 매우 멀리 떨어져 있지만 과거는 되살아나고 만다.(”벽 속의 쥐”, ”숨어있는 공포”, ”아서 저민 가의 비밀”, ”인스머스의 그림자”, ”사르나스에 찾아온 종말”, ”찰스 덱스터 워드의 비밀” 등)
일부 작품에서 주인공들은 자신의 행위나 사건의 진행을 자신이 통제하지 못한다. 많은 작품에서 등장인물들은 도망가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위험을 회피할 수 있지만 이러한 작품들의 주인공들은 위험의 회피가 불가능하거나 대단히 힘들다. 외계에서 온 색상, 마녀의 집이 이러한 작품에 해당한다. 여러 작품에서 주인공들은 강력한 악의나 무관심한 존재들의 희생자가 된다. 주인공의 선조와의 관계로 인해 도망가거나 심지어 자살을 한다고 해도 안전을 얻지 못한다. (계단 위의 무언가, 아웃사이더, 찰스 덱스터 워드의 비밀 등) 어떤 경우엔 이러한 운명이 전 인류를 향해 드리워지고, 이걸 벗어날 방법은 없다. (시간을 벗어난 그림자)
팬들에게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은 독일의 보수적 혁명 이론가인 오스발드 스펜글러와 닮아 있다. 서구의 타락에 대한 스펜글러의 비관적 관점은 러브크래프트의 반현대적이고 보수적인 세계관 전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스펜글러적인 반복적 타락은 광기의 산맥에서 부분적으로 보여진다. S.T. 조쉬는 “H.P. 러브크래프트 : 서구의 몰락”에서 러브크래프트의 정치적이고 철학적인 관점에 스펜글러를 거론한다. 러브크래프트는 1927년 클라크 애쉬튼 스미스에게 쓴 편지에서 “난 스펜글러가 그 철학적 증거물들을 완성하기 이전부터 서구 문명의 기계적이고 산업적인 이 시대는 전형적인 타락의 본보기라고 생각해 왔다.”라고 썼다. 러브크래프트는 스펜글러 이외에도 문명의 타락을 철학적 화두로 삼았던 독일의 또 한명의 지성 프리드리히 니체의 저작도 알고 있었다.
러브크래프트는 문명이 야만적이고 원시적인 것들에 대항하는 이야기를 자주 다루었다. 어떤 작품에선 이런 갈등이 개인적인 수준에 머물지만 대부분의 주인공들은 문명인이고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다. 이러한 주인공들이 점차로 불분명하고 공포스런 영향에 의해 타락해 간다.
이러한 작품에서 “저주”는 비인간적인 무언가와의 이종교배 때문에 세대를 이어 나타나거나 (아서 저민 가의 비밀 (1920), 인스머스의 그림자 (1930)) 혹은 마법의 영향 때문인 경우도 있다. (찰스 덱스터 워드의 비밀). 신체적인 퇴화와 정신적 쇠퇴는 동시에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더럽혀진 피”라는 주제는 러브크래프트 자신의 가정사와 연계되어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러브크래프트가 아버지에게서 매독을 태아전염으로 감염되었다는 의심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이야기에서는 사회 전체가 야만의 위협에 처하거나 야만적인 것이 외부적인 위협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문명화된 종족들은 전쟁으로 사라져버린다. (폴라리스). 일부 작품에서는 고립된 인간 집단이 타락하여 원시적인 상황으로 되돌아가기도 한다. (숨어있는 공포). 하지만 대부분의 작품에서는 이러한 이야기들에서 문명은 비인간적인 힘에 영향을 받은 악의적인 하층민들에 의해 점차 약화되어간다.
영국이 각종 분쟁들 -보어전쟁, 인도, 1차대전 등- 로 인해 점차 힘을 잃어갔던 상황이 러브크래프트의 세계관에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연구가 부족하다. “포효하는 20세기”속에서 러브크래프트는 여전히 무명 작가였고, 생계는 힘들었으며 뉴욕으로 비 유럽 이민자들이 몰려다는 것을 보며 환멸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러브크래프트가 살았던 시대의 미국은 우생학, 반천주교주의, 반유대주의, 원주민 보호주의, 인종 분리주의가 횡행하고 혼혈법이 시행되던 시기였다. 그리고 그의 작품은 이러한 시대를 반영하고 있다.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에서 미덕, 지성, 문명, 합리성은 앵글로-색슨 신교도 상류층의 것이다. 이러한 요소들은 대체로 비 앵글로-색슨(대체로 유색인)의 타락, 무지, 야만, 비합리와 대비된다. 러브크래프트는 영국 문화를 문명의 정점으로 보았으며 영국에서 파생된 미국은 그 다음으로, 그리고 다른 모든 것은 미국 아래에 있는 것으로 보았다.
민족 문제는 인종에 비해서 좀 더 은밀히 나타난다. 러브크래프트는 앵글로-색슨 문화를 존중했지만 모든 백인 문화에 대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비 앵글로-색슨 백인에 대해서는 자주 부정적으로 다루었다. 캣스킬 산맥의 쇠락한 네덜란드 이민자의 후손에 대해서는 “남부의 전형적인 백인 쓰레기”라고 부르기도 했다. 다른 작품 ”사원“의 서술자는 1차 세계대전의 무자비한 독일군 U보트 선장이다. 그는 그 자신이 불러일으킨 저주에 눈이 멀어 “독일의 강철같은 의지”를 믿으며 조국에 대한 우월감으로 구명보트의 생존자를 기관총으로 사살하고 나중엔 그의 선원까지 죽여버리고 만다.
러브크래프트의 계층 구분은 그의 민족에 대한 관점과도 유사하다. 그의 작품 ”시원한 공기“에서 가난한 히스패닉 사람들을 경멸하지만 무노즈 박사의 부와 귀족적 풍모에 대해서는 “가문 좋고, 교양있고 분별 있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S. T. 조쉬는 “러브크래프트가 인종주의자였다는 것을 부정할 근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이 문제를 '시대적 상황'으로 그냥 치나쳐서도 안 된다.”라고 말한다. 러브크래프트는 이러한 그의 관점을 -비록 출판되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동시대의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내었기 때문이다. 미셸 우엘벡은 “H. P. 러브크래프트 : 세계에 대항하여, 삶에 대항하여”에서 “러브크래프트의 인종주의적 관점이 작품에 반영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인종적 증오가 감성적인 힘으로 작용하였고 러브크래프트의 많은 대작들에 영감을 제공하였던 것이다.
최근의 연구에서는 러브크래프트의 인종주의 그 자체만이 아니라 그가 신봉하고 있었던 이론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예를들어 마이클 거나우의 “던위치의 공포연구”에 따르면 러브크래프트는 작품의 결말에서 흑인 쌍둥이를 순교자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는 최소한 그의 삶에서 어느 정도는 여러차례 자신의 인종적 관점에 대해 의문을 가졌음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라이온 스프래이그 드 캠프의 자서전에 따르면 러브크래프트의 말년에 이르러 여행을 다니며 다양한 민족적 배경의 사람들과 만나가면서 그의 인종적 관점이 변화했다고 한다. 이 책에서 러브크래프트는 1930년대의 독일에서 벌어진 유대인에 대한 폭력에 두려움을 나타내었으며 이를 비이성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하였다고 한다
20세기로 접어들어 과학에 대한 의존이 점차 심해졌고 이는 새로운 시대를 여는 것이었음과 동시에 러브크래프트가 과학을 대하는 방식을 점차 분명하게 만들었다. 러브크래프트는 과학의 발전으로 인한 우주에 대한 이해의 증대로 인한 공포의 가능성의 증가를 묘사한다. 외계에서 온 색상에서는 오염된 운석에한 연구가 공포로 이어지는 것을 통해 과학의 무능함을 보여준다.
1923년 제임스 F 모튼에게 쓴 편지에서 러브크래프트는 특별히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세계를 혼돈으로 몰고 가 조화를 웃음거리로 만들거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1929년 우드번 해리스에게에게 기술적인 편의가 과학의 몰락을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사실 그 당시에 사람들은 과학에는 한계가 없으며 과학으로 불가능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러브크래프트는 공포스런 결과물이 나타난 가능성을 생각하였다. 크툴루의 부름에서 등장인물들은 “비정상적이고 비유클리드적이고 지구와는 다른 차원을 연상시키는 혐오스러운 공간”에 진입한다. 비 유클리드기하학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의 수학적 배경이며 러브크래프트는 외계 고고학을 탐험하며 이 이름을 몇 번이고 언급한다.
혐신론(嫌神論)은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에서 여러 차례 등장한다. 많은 러브크래프트의 작품들은 직간점적으로 사랑에 대한 믿음이나 신의 수호를 부정한다. 러브크래프트 세계는 인류에 관심이 없거나 적대적인 신들의 지배를 받는다. 특히 크툴루 신화에서는 다른 종교의 창세나 창조 신화와는 다른 대안적인 인간의 기원을 찾는데 탐닉한다. 주인공들은 대체로 종교 경전보다는 물리학에 관심을 갖는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다. 허버트 웨스트 - 리애니메이터는 학계의 무신론을 반영한다. ”은 열쇠의 문 저편에“에서도 주인공인 랜돌프 카터는 꿈으로 접근할 수 없게 되자 종교에서 안정을 찾으려고 노력하지만 끝내 실패하고 믿음을 잃어버리게 된다.
러브크래프트 자신은 무신론을 견지하고 있었다. 1932년에 로버트 E. 하워드에게 쓴 편지에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우주의 의지나, 천국이나, 영생과는 다르게 세상은 저주받았다는 것이다. 이건 우주론 중에서는 아주 저열한 것들이다. 그리고 나는 이것들이 헛소리이며 무시해도 좋은 달빛이라고 요란하게 떠들어대고 싶지도 않다. 이론적으로 나는 불가지론자이지만 급진적인 증거에 의한다면 나는 아마 실질적으로, 그리고 임시적으로 무신론자로 분류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러브크래프트의 작품 목록 항목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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